MWC 2017 X LG G6
IT업계의 한해 글로벌 트렌드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모바일월드콩그레스 2017 (MWC 2017 :: 2.27~3.2)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습니다. 그 주제는 매년 변하지만 언제부턴가 변함없이 메인을 장식한 것은 늘 스마트폰이었습니다. 아무래도 CES(세계가전전시회)와 더불어 정기적으로 열리는 IT 행사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다 보니 제조사들이 사활을 걸고 만들어 낸 신제품을 공개하고, 적극 홍보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MWC에서 공개된 스마트폰은 참석한 기자들을 통해 행사 기간 내내 많은 소개 기사와 체험기를 쏟아내기 때문에, 제조사로서도 출시 전 자사 모델에 대한 시장의 반응과 보완점을 예측해보기에도 알맞습니다.
안타깝게도 올해 행사에서는 삼성이 갤럭시S8 공개를 3월 말로 미루며 불참했는데요. 안드로이드 진영의 대표 격인 갤럭시가 빠진 자리에는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의 여러 제조사, HMD(노키아), TCL(블랙베리), LG전자 등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여러 제조사가 골고루 조명을 받았습니다. 이번 행사 기간 내내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건 라이카 듀얼 카메라를 장착한 화웨이의 P10, 피처폰으로 깜짝 등장한 노키아의 3310, 그리고 LG전자의 G6입니다. 특히 G6는 행사 기간 여러 전문 매체로부터 'MWC 최고의 스마트폰'이란 찬사를 받으며 기대를 한 몸에 모았는데요. LG의 주장에 따르면 약 31개 어워드에 올랐다고 하니, 사실상 싹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LG G6)
확실히 각종 자료를 통해 접해본 LG G6는 상당히 잘 뽑아낸 제품입니다. 실물을 직접 보고 사용해봐야 평가가 사실인지 확인할 수 있겠지만, '기본에 충실했다'라는 LG의 모토만큼은 확실해보였습니다. 잘 쓰지는 않지만 화려해 보이는 '과시용 기술'보다는 새롭게 선보인 18:9 디스플레이의 장점과, 사용에 직접 연관된 디자인, 기능에 대한 소개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며 무심한 듯한 무게감을 뽐냈습니다. 그러나 얼핏 보기에 '완벽해 보이는' 이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전문가와 소비자들의 시선이 영 곱지만은 않습니다. 과연 이 기대치만큼 구매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리를 보장받을 수 있느냔 의구심이 따라붙기 때문입니다. 과연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혁신과 기만, 야누스의 얼굴 G5
혁신
시계를 잠시 1년 전으로 돌려봅시다. MWC 2016이 개최되기 직전인 작년 2월, LG전자는 전작인 G4의 판매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새로운 혁신 카드를 꺼내 듭니다. 바로 '모듈형 스마트폰'인 G5 였지요.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플래그십 제품의 추세가 '일체형'으로 변화하는 시기였다는 걸 생각하면 분리, 조립이 가능한 모듈형 스마트폰의 출시는 엄청나게 파격적인 행보였습니다. 아마 좌초된 구글의 조립식 스마트폰 프로젝트인 '아라' 이후 스마트폰 업계에서 모듈 구조가 시도된 경우는 G5가 처음이었을 겁니다. 이 아이디어는 작은 프레임의 한계로 고급 퍼포먼스를 내는 부품을 탑재하기 어려운 스마트폰에 탈부착이 가능한 모듈을 제공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상황에 맞게 스마트폰의 기능을 최적화시키자는 생각이었죠. 그리고 이는 확실히 괜찮은 발상이었습니다. 당시 국내외 다수 미디어와 제품 출시를 기다리는 소비자들에게선 혁신적이란 호평이 쏟아져 나오곤 했습니다. 지금껏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시도에 대한 찬탄, 그리고 이제야말로, 스마트폰이 정말 만능 기기가 되나 싶었던 거죠.
(LG G5)
기만
그러나 G5에는 치명적인 결함들이 감춰져 있었습니다. 아니, 감춰졌다기보단 뒤늦게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겁니다. 우선 모듈의 가격이 너무 비쌌습니다. 'LG Friends'로 명명된 모듈 집합체는 가장 대표적으로 소개된 Cam Plus (카메라) 모듈이 9만 9천 원, Hi-Fi Plus (오디오) 모듈은 무려 18만 9천 원으로, 단말기 가격 대비 10~15%에 해당하는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며 쉽게 구매하기 힘든 그림의 떡과도 같았습니다. 게다가 다른 제품인 360도 카메라, VR고글 등은 기기와 물리적으로 연결되는 형태가 아니라 WiFi로 연동되는 '주변기기'에 불과했으며, 가격 마저 앞서 말한 제품들보다 훨씬 비싸게 책정됩니다. 정말 G5가 모듈형 스마트폰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조금 더 현실적인 가격대에서 마진보다 경험을 선사하는 선택을 해야 했지 않나란 아쉬움이 듭니다.
어쨌거나 가격은 아쉬운 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소수라도 구매할 수 있다면 아예 못사는 것도 아니고 기만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더군다나 비싼 돈을 지불했더라도 '뽕을 뽑듯' 이 모듈을 오랫동안 사용할 수만 있다면 투자 대비 효율이 나쁜 건 아닐 테니까요. 게다가 '모듈'에는 비슷한 규격을 지원하는 여러 단말에 장착하여 사용할 수 있는 조립 부품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LG는 이에 대해 정확한 답을 내지 않았습니다. 아래는 작년 3월 24일, 조준호 LG 무선사업부 사장이 기자 간담회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답변한 내용입니다.
“모듈의 재사용은 제품 디자인과 직결되므로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그렇다고 다음 제품도 G5랑 비슷한 걸 낼 수도 없지 않나. 대응 방안으로는 어댑터를 쓰든지 해서 차기작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모듈 타입은 좀 더 연구를 해봐야 할 것 같다.”
(LG Friends)
조금 이상함이 느껴지지 않나요? 이 말은 확실한 대응 방안도 마련하지 않은 채 일단 출시부터 했다는 말과도 같이 들립니다. '혁신적이다'는 미디어 평만 잔뜩 등에 업고 말입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은 상상하는 그대로입니다. 후속작인 G6는 모듈형이긴커녕, 방수/방진을 포함한 일체형으로 출시됐으며, LG는 G5의 모듈 활용 대책에 관해서는 일체의 입장 발표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결국 G5 단말기 및 모듈 구매자들은 LG가 내세운 '혁신'이란 가면 아래 실험용 마루타로 전락해버린 거나 마찬가지가 됐습니다. 국내 스마트폰 평균 사용 교체 주기가 약정이 만료되는 2년 전후인 것을 생각해보면, 모듈을 지원하는 후속 모델 없이 이 고가의 악세사리들은 휴대폰 교체와 함께 사장돼버릴 가능성이 매우 다분합니다. 한 번 쓰고 마는 고가의 일회성 모듈. 과연 G5는 그만한 값어치를 했을까요?
이뿐 아닙니다. LG는 한술 더 떠 G5 출시 8개월 만인 16년 10월 초, G5의 출고가를 무려 13만 원이나 인하해버립니다. 노트7 리콜 사태에 따른 틈새와, G5의 판매량 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되는데요. 그렇다고 출시한 지 1년도 안 된 플래그십 모델의 가격을 스스로 인하하는 것은 그다지 옳은 전략이 아니었습니다. 플래그십을 구매하는 사람의 심리에는 '고가 제품'을 사용한다는 만족감도 포함되기 마련인데, 제조사 스스로 이런 보이지 않는 가치를 깎아버린 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발적인 가격인하는 스스로 이것이 '덜 팔린 제품'임을 인정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결정이 과연 제조사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모델의 가치를 지켜주는 선택이었을까요?
잘나가는 자식만 자식인가, G4, V10
(위로부터 LG G4, V10)
이 밖에도 2016년 구글이 발표한 최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인 버전 7.0 누가(Nougat) 업데이트 여부 문제도 최근까지 LG의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준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누가' 발표 후 올해 초 주요 경쟁사인 삼성전자는 2015년도 이후 출시된 보급,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대상으로 누가 업데이트 계획을 명시한 자료를 공개합니다. 이에 질세라, 아니 아니, 이에 '반해' LG는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G4와 V10에 대해 '최적화가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누가 업데이트를 지원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또 한 번 비난의 봇물이 터지기 시작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일입니다. 어쨌거나 LG 측의 입장대로라면 G4와 V10은 '누가'를 구동하기에 모자란 성능이란 말인데, 이 논리는 조금만 살펴봐도 어불성설이란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지난 2015년, G4와 V10을 발표했던 LG는 구글과 협력하여 넥서스5X라는 레퍼런스 폰까지 출시합니다. 레퍼런스 폰이란 구글이 새로운 운영체제를 발표할 때마다 안드로이드 파편화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개발의 기준'으로서 제시하는 모델을 뜻합니다. 그리고 새 운영체제가 나오면 가장 먼저 업데이트를 적용받는 기기이기도 합니다. 보통 2~3회의 판올림을 받는데요, 흥미로운 사실은 '누가' 판올림을 받은 넥서스 5X가 G4, V10과 동일한 프로세서(스냅드래곤 808, Adreno 418)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여유로운 시스템 구동에 영향을 미치는 RAM 용량은 V10이 4GB, G4가 3GB, 5X는 이보다 적은 2GB입니다. Amazing!
(LG Nexus5X)
실제로 작년 9월에 일찍이 '누가' 업데이트를 마친 넥서스 5X의 유저들의 리포트를 살펴보면 성능 저하 이슈는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자잘한 버그 성 문제를 제외한다면요. 즉, 성능을 보장할 수 없으므로 업데이트 해줄 수 없다는 LG의 주장은 애초에 설득력 없는 변명에 불과했다는 말이 됩니다.
물론 운영체제 판올림은 많은 개발 비용과 인력, 시간이 투자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LG는 전 세계로 제품을 판매하는 글로벌 기업입니다. 업데이트 해주고 싶어도 정말로 여력이 없어 못 하는 국내 모 기업과는 가진 여유 자체가 다릅니다.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급형도 아닌 플래그십으로 발표한 제품들에 대해 소비자 기대치보다 훨씬 낮은 1회 업데이트에 그치려한 이면에는 흥행에 실패한 G4와 V10의 저조한 판매량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LG 입장에서는 단순히 실패한 작품일 뿐인거죠. 어쨌거나 2014년 이후 라인업을 대폭 줄이고 플래그십 집중 전략을 펼쳐온 LG에게 소수 제품에 대한 업데이트를 지원하지 못할 이유는 그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는 판단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하지만 올해 초부터 G4, V10의 '누가' 업데이트 미지원에 대한 소비자 반발이 거세지고, 쉽게 가라앉을 낌새가 보이지 않자 뒤늦게 LG의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이 들어온다는 판단을 했던 걸까요? 고작 며칠 전인 2월 24일경 '누가 업데이트는 없다.'고 못 박았던 LG가 3월 4일 돌연 태도를 바꿔 G4와 V10에 대한 누가 업데이트를 약속하는 발표를 합니다. 전형적인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입니다. 해당 포스팅에 대한 누리꾼들의 의견과 시선 역시 썩 곱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뒤늦게라도 업데이트를 결정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처음부터 강한 반발이 예상됐을 그 결정을 내리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임이 분명합니다. 잃은 건 있는데 얻은 건 없는 상황이죠. 더군다나 아래 발표 내용을 보다시피, 끝까지 기존의 주장(최적화 가능성)을 내세우며, 향후 업데이트 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변명할 여지를 남겨두는 모습은 기왕 내린 결정이 영 쿨해 보이지 않게끔 합니다. 정작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쉬워도, 가장 중요한 집 나간 소를 찾아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데도 말입니다. 우리 소가 다시 돌아올 땐, 아마도 주인의 너그럽고 따스한 말 한마디와 반성을 기대하지 않을까요?
책임감이 신뢰를 만든다.
LG는 국내에서 늘 이인자였습니다. 해외에서는 더욱 열악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고, 나름대로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의 변화를 제품에 적용하고자 노력하는 기업이었습니다. 제품의 품질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LG가 제품은 잘 만드는데 홍보팀이 안티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매년 끊이질 않을까요. 게다가 LG는 이번 G6를 통해 장기간 지속된 무선사업부 적자의 늪을 탈출해야 할 절박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작은 것을 위해 큰 것을 잃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를 더는 범해선 안 될 것입니다. 아무리 전략이 바뀌었다 해도, 또는 아무리 적게 판매된 제품이라 한들, 일단 기업의 로고를 박아 세상에 내놓은 이상,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그 사후를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신뢰의 기본입니다. 그래야 비록 실패하더라도, 그다음 제품도 소비자들이 다시 한번 믿고 구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큰 기업일수록 브랜드와 이미지는 제품 이상으로 중요한 자산이자 가치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 주는 것은 다름 아닌 고객들이지요. 기업을 최고의 위치에 올려주는 것 또한 고객입니다. 더군다나 후발 주자일수록, 뒤처졌을 수록 이런 고객 한명 한명의 가치는 더욱 소중합니다. 기업의 작은 태도, 결정 하나가 이들의 마음과 입을 움직이고, 그것이 실적이란 객관적인 성적표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잘 만든 제품이라도 제조사에 대한 평가가 나쁘고, 신뢰도가 바닥이라면 굳이 사려는 고객의 수는 훨씬 더 줄어듭니다. 그 제품에 대한 대채제가 없을 만큼 독보적이지 않다면요. 그런데 앞으로 LG가 팔아야 할 G6는? 좋은 제품임은 분명하지만 독보적인 제품이 아닌 것 또한 분명합니다. 다만, 올해 출시되는 스마트폰 중에서 괜찮은 매력과 경쟁력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요. 그 가능성을 알아봐 주고 구매로써 증명해줄 고객의 마음과 신뢰를 얻어내는 일이 LG에게 무엇보다 시급한 까닭입니다.
그만큼 LG는 이번 G6 판매와 함께 불거진 각종 논란에 대해 납득할 만한 보완책을 하루빨리 내놓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G6마저 흥행에 실패하고, G7은 다시 모듈형 스마트폰으로 돌아오더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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