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구글이 구글홈 일정 관리 서비스에 '미녀와 야수' 관람을 추천하는 광고를 실었다가 크게 된서리 맞은 사건을 기억하는가? 당시 사용자들은 동의도 없이 갑자기 파고 들어온 음성 광고에 크게 분노하며 짜증을 토해냈다. 아마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광고 회사(?)인 구글 입장에선 광고판으로서의 스마트홈이 가진 가능성을 점쳐보고 싶었겠지만, 그 결과는 차가웠다. 이미 어딜가나 광고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프라이버시 영역까지 비집고 들어오는 광고에 결코 호의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논란이 일자 구글은 해당 추천이 광고가 아니었다며 곧바로 관련 기능을 정지시켰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안 된 이 시점에 버거킹이 구글홈의 취약점(?)을 노린 광고로 화제다. 4월 12일(현지 시각) <더 버지>에 따르면 버거킹은 구글홈을 활용하는 '끔찍하고', '천재적이고', '화나고 재미있는', 어쩌면 '저질'인 15초짜리 광고를 내보내며 단박에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버거킹 광고 (사진=유튜브 캡쳐)
영상 속 버거킹 직원이 이렇게 말한다. '15초란 시간은 와퍼가 얼마나 훌륭한지 설명하기엔 부족해. 마침 내게 좋은 생각이 있는데... 오케이 구글! 와퍼 햄버거가 뭐지?'
그 순간 친절하게도(?) 광고가 흘러나온 TV 주변에 있던 구글홈 기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와퍼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광고스러운' 표현으로 화면 속 직원을 대신해서 말이다. 여기에는 더 버지의 표현처럼 기발하면서도 불쾌한 버거킹의 '계락'이 숨어있었다.
우선 알아야 할 것은 구글홈의 경우 특정 질문에 대한 답을 일차적으로 위키피디아에서 찾도록 돼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광고가 흘러나오던 시점에 구글홈이 읽어준 내용도 위키피디아에 실린 와퍼에 대한 정의란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위키피디아가 누구나 내용 수정이 가능한 오픈 백과란 사실이다. 원래 버거킹 광고 송출 일주일 전, 와퍼에 대한 위키피디아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와퍼 햄버거는 국제 패스트푸드점 버거킹과 오스트레일리아의 프랜차이즈인 헝그리잭이 판매하는 햄버거 제품입니다.' 일반적인 사전적 정의다. 그러나 광고 일주일 전, 이 내용은 다음과 같이 바뀐다.
'와퍼 버거는 방부제나 충전제 없이 100% 화염 구이 소고기 패티에 토마토, 양파, 케첩, 마요네즈를 참깨 씨앗 빵에 담았습니다.' 어떤가, 누가봐도 광고 냄새가 물씬 나는 문장이다. 심지어 보도된 바에 따르면 와퍼의 위키 문서를 이렇게 바꾼 당사자는 버거킹의 마케팅 책임자다.
즉, 처음부터 버거킹은 구글홈을 광고에 활용할 목적이었던 것이다. 구글홈을 호출하는 명령어인 '오케이 구글'을 사용한 것도, 질문에 대한 해답 소스인 위키피디아를 미리 수정한 것도 이같은 그림을 염두에 둔 셈이다. 버거킹 측에서는 나름 신선하고 재밌는 발상이었다고 생각했겠지만, 구글홈 미녀와 야수 광고 사건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또 한번 분노했다. 몇몇 사람들은 편집 전쟁을 방불케하며 위키피디아의 와퍼 항목을 악의적 내용으로 수정하며 광고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결국 사태가 정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구글은 직접 구글홈에서 와퍼 광고가 나오지 않도록 차단 조치했고, 위키피디아 역시 와퍼 문서를 원래의 문서로 복원시키고 추가 수정을 막으며 일단락시켰다.
문제의 버거킹 광고 (영상=유튜브)
이번 일은 일종의 헤프닝으로 치부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주인에 대한 별도 인식없이 모든 음성 명령에 작동하는 스마트홈 기기에 대한 문제점을 다시 한번 떠올리는 사건이다. 비슷하게 올해 1월에는 미국 가정에서 한 아이가 아마존 에코로 부모 몰래 장난감을 주문한 일이 있었는데, 웃긴 건 그 사건을 보도하는 뉴스 속 음성 명령을 듣고 미국 전역의 에코가 같은 장난감을 주문해버리며 일이 커지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구글은 4월 11일 구글홈 기반 시스템인 구글 어시스턴트에 가족 계정을 여러 개 추가하는 기능을 곧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해당 기능에 계정 외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는 기능이 포함되는 지는 확실치 않은데, 이런 헤프닝과 악용을 막기 위해선 꼭 필요한 기능으로 보인다.
앞으론 광고를 집행하는 기업들에게도 적당한 '분별'이 요구된다. 기발한 광고와 짜증나는 광고는 한 끗 차이임을 명심하며, 광고가 있어도 좋을 영역과 타이밍을 구분하는 재치 또한 길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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